1부 · 5장
부모가 남긴 말, 아이가 남기지 못한 말
사건 뒤에 글이 발견되면 사람들은 그 글에서 이유를 찾는다. 무엇이 힘들었는지,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누구에게 어떤 말을 남겼는지 읽는다.
사건 뒤에 글이 발견되면 사람들은 그 글에서 이유를 찾는다. 무엇이 힘들었는지,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누구에게 어떤 말을 남겼는지 읽는다. 남긴 사람이 직접 썼다는 이유로 그 글은 다른 설명보다 가까운 진실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한 사람이 남긴 글은 그 사람의 서술이다. 그 글에 가족 모두가 등장한다고 해서 가족 모두의 진술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일 수 있지만, 말하지 못한 사람의 의사까지 대신 증명하지는 못한다.
가상의 문장 하나를 생각해 보자. 아이를 혼자 남겨 둘 수 없었다는 말이다. 이 문장은 남겨질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읽힐 수 있다. 동시에 문장 속에서 빠진 것도 있다. 다른 사람이 돌볼 가능성, 아이가 살고 싶었을 가능성, 부모의 예상과 다른 삶이 열릴 가능성이다. 글을 쓴 사람의 시야 밖에 있던 길은 글 안에도 들어오지 않는다.
그 시야의 한계를 읽어야 한다. 글쓴이가 거짓말을 했다고 미리 결정하자는 뜻이 아니다. 진심으로 쓴 말도 다른 사람의 삶 전체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사람은 자기 고통에 대해서도 모든 것을 알지 못하고, 가까운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부모가 남긴 말이 설득력을 얻을수록 아이의 침묵은 동의처럼 취급되기 쉽다. 반대하는 글이 없고, 항의하는 목소리도 없으니 어른의 설명만 남는다. 하지만 아이가 반박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설명이 옳기 때문이 아니다. 이미 말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비대칭을 잊지 않아야 한다.
그렇다고 아이의 마음을 대신 창작해 반대편에 세우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실제 아이가 남기지 않은 말을 만들어 놓고 이것이 진심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다른 방향으로 같은 침묵을 이용하는 셈이 된다. 우리는 아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모를 수 있다. 그 모름을 견디면서도 아이의 생명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말할 수 있다.
아이에게 반드시 살아갈 계획이 있었다는 증거를 찾아야만 죽음의 부당함이 성립하는 것도 아니다. 다음 주 약속이 없었어도, 일기에 희망을 적지 않았어도, 아이는 보호받아야 했다. 미래를 증명해야만 미래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록을 읽을 때는 누가 썼는지뿐 아니라 누가 쓸 수 없었는지도 살펴야 한다. 어른은 자기 사정을 긴 문장으로 남길 수 있다. 아이는 글을 잘 쓰지 못했을 수 있고, 상황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을 수 있다. 글의 길이가 삶의 무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여기에서 언론과 독자의 책임도 생긴다. 남겨진 글을 자세히 옮길수록 사건을 깊이 이해한다고 믿기 쉽지만, 반복되는 설명은 행위의 정당화로 읽힐 수도 있다. 글 전체를 공개해야만 공익이 생기는지, 아이의 사생활과 남은 사람의 안전은 어떻게 되는지 생각해야 한다. 이유를 알아보는 일과 사적인 고통을 전시하는 일은 같지 않다.
어떤 문장은 쓰인 그대로 보존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보존과 동의는 다르다. 우리는 부모가 그렇게 썼다는 사실을 기록하면서, 그 말이 아이의 뜻을 대표하지는 않는다고 함께 적을 수 있다. 이것은 검열이 아니라 자료의 범위를 분명히 하는 일이다.
나는 아이의 침묵을 내 주장에 유리한 말로 채우고 싶지 않다. 그 침묵 앞에서 어른의 설명을 조금 덜 확신하고 싶다. 아무리 절박한 문장이라도 다른 사람의 죽음을 대신 선택할 자격을 주지는 않는다.
남겨진 말은 읽어야 한다. 남기지 못한 말의 자리도 남겨 두어야 한다. 그 빈자리를 성급히 메우지 않는 것이, 아이를 한 사람으로 대하는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