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 사이글 2
말하지 못한 숫자
이 글의 가족과 재정 상황은 모두 허구다.
이 글의 가족과 재정 상황은 모두 허구다.
민재의 아버지는 종이에 적은 숫자를 세 번 고쳤다. 더한다고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빠뜨린 지출이 생각날 때마다 합계가 달라졌다. 종이 위에 놓인 휴대전화에는 아내에게서 온 짧은 메시지가 떠 있었다. 오늘은 몇 시에 들어오느냐는 물음이었다.
아버지는 답을 쓰다가 지웠다. 집에 돌아가면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해야 했다. 민재가 말을 걸면 웃어야 하고, 아내가 내일의 일정을 묻으면 대답해야 했다. 그런 저녁을 치르기에는 자기 안에 남은 것이 없는 것 같았다.
그가 두려워한 것은 돈의 액수만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가족 앞에서 자신은 방법을 찾는 사람이었다. 모르는 일이 있어도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그 말이 더는 통하지 않을 때 자기가 어떤 사람이 되는지 알 수 없었다.
집에 돌아오니 민재가 새 공책을 보여 주었다. 첫 장에 이름을 쓰다가 틀려서 지우개 자국이 크게 남아 있었다. 아버지는 쓸데없는 것도 자꾸 산다는 말을 했다. 공책은 학교에서 받은 것이었다. 민재는 설명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아내가 아이를 방으로 보낸 뒤 물었다.
“무슨 일 있어?”
아버지는 없다고 답했다. 그러고는 왜 자꾸 사람을 의심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내는 의심하는 게 아니라 걱정돼서 묻는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이 더 견디기 어려웠다. 걱정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날 밤 아버지는 부엌에 혼자 앉았다. 종이의 숫자는 그대로였다. 방문 너머에서 민재가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는 자신이 오늘 아이에게 무엇을 말했는지 떠올렸다. 아이는 아무것도 사지 않았는데 비용이 많이 드는 사람처럼 꾸중을 들었다.
그가 다음 날 곧바로 달라졌다고 쓰면 이야기는 쉬워질 것이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는 변화가 그렇게 빠르게 오지 않는다. 아버지는 여전히 말하기 두렵고, 아내는 더는 괜찮다는 말을 믿기 어렵다. 민재는 공책을 책상 서랍에 넣어 둔다.
변화가 시작된다면 아버지가 숫자를 종이 밖으로 꺼내는 일에서 시작될 수 있다. 가족이 감당할 문제와 전문적인 확인이 필요한 문제를 구분하고, 자신이 모두 해결하겠다는 약속 대신 지금 무엇을 모르는지 말하는 일이다. 아내에게도 선택에 필요한 정보를 주어야 한다. 아이에게는 돈의 문제 때문에 겁을 주었던 행동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이 쉬운 대화라는 뜻은 아니다. 말한다고 바로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다만 말하지 않는 동안 위험과 불안이 가족 전체에 퍼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볼 필요가 있다. 숨기는 것이 보호라고 믿었던 행동이 다른 사람의 판단 기회를 빼앗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내에게 보낼 메시지를 다시 쓴다. 돈에 관해 이야기할 것이 있다고 적는다. 아직 금액은 쓰지 못한다. 잠시 망설인 뒤 내 잘못도 있다고 덧붙인다. 그 문장이 책임을 다한 증거는 아니다. 책임을 시작하기 위해 열어야 할 문이다.
민재의 공책에는 첫 장 뒤로 깨끗한 종이가 남아 있다. 아버지가 해결해야 할 숫자와 아이가 써야 할 숫자는 같은 문제가 아니다. 그 둘을 다시 나누어 놓는 일이 이 집에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