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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 22장

제목이 정하는 애도의 방향

많은 사람은 사건의 전체를 읽지 않는다. 제목을 보고 몇 줄을 읽은 뒤 다음 소식으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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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은 사건의 전체를 읽지 않는다. 제목을 보고 몇 줄을 읽은 뒤 다음 소식으로 넘어간다. 그래서 제목은 단순한 입구 이상의 역할을 한다. 누구의 이야기로 기억할지, 무엇을 안타까워할지, 어떤 질문을 남길지 방향을 정한다.

부모의 사정을 앞세운 제목에서는 아이가 배경으로 밀릴 수 있다. 반대로 자극적인 범죄의 말만 앞세우면 고통과 지원의 부재를 살필 여지가 사라질 수 있다. 정확한 보도는 감정을 크게 만드는 일보다 확인된 사실을 구분하고 중요한 책임을 놓치지 않는 일에 가깝다.

가상의 편집실에서 기자는 부모가 남긴 문장을 제목에 넣으려 한다. 절박한 말이어서 독자의 눈길을 끌 것 같다. 동료는 그 문장이 아이의 뜻처럼 읽히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두 사람은 제목을 다시 쓴다. 이 장면에서 필요한 것은 더 차가운 기사가 아니라 누구의 말을 어떻게 전달하는지 의식하는 기사다.

아이를 피해자로 본다는 이유로 사건의 잔혹한 세부를 더 많이 공개할 필요는 없다. 어떤 일이 잘못되었는지 알리는 데 실행 방법과 신체의 상태를 자세히 나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정보는 공익에 비해 피해가 클 수 있다. 고통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것과 고통을 존중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사망한 아이의 사진을 어디까지 사용할지도 생각해야 한다. 환하게 웃는 사진은 독자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러나 사진 속 아이는 자신의 얼굴이 사건의 상징으로 반복되는 데 동의한 적이 없다. 유가족의 의사와 사생활, 공익을 신중히 살펴야 한다. 애도를 위해 모든 독자가 아이의 얼굴을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기사에 부모의 경제적 사정을 넣는다면 그 정보가 무엇을 설명하는지 분명해야 한다. 빈곤이 곧 살해로 이어진다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 추정되는 동기와 확인된 사실을 구분하고, 하나의 이유로 모든 행동을 설명하지 않아야 한다. 모르는 부분을 모른다고 쓰는 것도 정확성이다.

주변인의 좋은 평판도 같은 주의가 필요하다. 평소 아이를 아꼈다는 증언은 그 사람이 보았던 관계의 한 부분이다. 집 안의 모든 날이 안전했다는 증명은 아니다. 반대로 누군가의 나쁜 인상을 근거로 처음부터 위험한 부모였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평판은 자료일 수 있지만 사실관계를 대신하지 않는다.

보도는 사건 당일을 넘어갈 필요가 있다. 아이가 살아남았을 때 어떤 지원이 이어지는지, 도움을 구하는 가족이 무엇 때문에 이용하지 못하는지, 기관의 대응은 어디에서 끊기는지 살펴야 한다. 다만 당사자의 일상을 계속 추적하는 방식이 아니라 제도와 책임을 검증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도움과 회복을 다루는 이야기도 필요하다. 위기를 넘긴 사람이 어떤 관계와 지원을 만났는지 알려 주면 다른 길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줄 수 있다. 이때도 개인의 강한 의지만을 성공의 원인으로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 누가 어떤 시간을 내 주었고 어떤 비용과 절차가 바뀌었는지 구체적으로 보아야 한다.

독자에게도 역할이 있다. 자극적인 제목을 비판하면서 그 제목만 가장 많이 나누는 행동은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 돌아볼 수 있다. 사건의 가족을 찾아내려는 추측에 참여하지 않고, 확인되지 않은 말을 퍼뜨리지 않으며, 책임 있는 후속 보도에 관심을 갖는 일이 가능하다.

이 책 역시 같은 기준에서 자유롭지 않다. 『마더』의 강렬한 장면을 서두에 놓은 까닭이 독자를 붙잡기 위한 효과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 그 장면에서 시작한 질문이 아이의 생활과 사회의 책임까지 이어져야 한다. 충격을 빌려 왔다면 그 뒤의 설명에 더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가 어떤 제목으로 사건을 기억하는지는 작은 문제가 아니다. 한 사람의 사정으로 모든 죽음을 묶을 것인지, 각자의 생명과 책임을 따로 볼 것인지가 거기에 담긴다. 애도의 방향을 정하는 문장일수록 서둘러 쓰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