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부 · 30장

아이에게 돌려주어야 할 약속

이 책을 시작할 때 나는 하나의 장면을 떠올렸다. 아들이 꺼낸 기억 앞에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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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시작할 때 나는 하나의 장면을 떠올렸다. 아들이 꺼낸 기억 앞에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이제 그 장면을 다시 생각하면 어머니의 표정만큼 아들의 말할 자리가 눈에 들어온다. 오랫동안 어른의 사정 안에 들어 있던 사건을 자기 경험으로 꺼내 놓는 자리다.

우리가 아이에게 돌려주어야 할 것도 그런 자리일 것이다. 어른이 정한 가족의 이야기 안에서만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경험과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대우받는 자리다. 아이가 작고 의존적이라는 이유로 그 자리를 나중으로 미룰 수는 없다.

약속은 거창하지 않을 수 있다. 네가 무섭다고 말하면 귀찮아하지 않겠다. 네가 다른 생각을 해도 버림받는 일이 되지 않게 하겠다.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너의 목숨으로 해결하지 않고 다른 도움을 찾겠다. 이런 약속은 아름다운 문구보다 실제 행동으로 확인되어야 한다.

부모에게 완벽함을 약속하라고 할 수는 없다. 실수할 수 있고 화가 날 수 있으며 도움 없이 어려운 시간을 버티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약속의 중심은 한 번도 흔들리지 않겠다는 다짐보다 흔들릴 때 안전을 지킬 방법을 찾겠다는 책임이어야 한다. 자기 한계를 인정하는 어른을 아이가 실패자로 보지 않아도 되는 문화가 필요하다.

사회가 해야 할 약속도 있다. 아이의 생명을 한 집의 사정으로만 남겨 두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부모의 실직과 질병, 관계의 문제와 돌봄의 어려움이 겹칠 때 필요한 도움을 연결하겠다는 약속이다. 그 과정에서 가난한 가족을 의심하고 부끄럽게 만드는 일을 경계하겠다는 약속도 포함되어야 한다.

기관은 자신이 처리한 업무만으로 설명을 끝내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 있다. 다음 담당자에게 실제로 연결되었는지, 아이의 생활이 어떻게 유지되는지 확인할 책임을 분명히 할 수 있다. 필요한 자원과 권한이 없다면 그것을 현장의 개인 탓으로 돌리지 않고 공개적으로 개선을 요구해야 한다.

언론과 글을 쓰는 사람에게도 약속이 필요하다. 부모의 말을 아이의 뜻으로 옮기지 않겠다는 약속, 확인되지 않은 마음을 사실처럼 쓰지 않겠다는 약속, 고통의 세부를 더 많이 보여 주는 것으로 책임을 대신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아이의 얼굴을 빌려 독자를 울렸다면 그 이후의 질문도 이어가야 한다.

독자로서 우리는 누군가의 죽음을 빨리 이해하려는 마음을 잠시 멈출 수 있다. 이해했다는 느낌은 편하지만 실제로는 모르는 것이 많다. 가족의 어려움과 행위의 책임, 아이의 경험을 한 문장에 접지 않고 각각 살펴볼 수 있다. 복잡함을 견디는 태도는 무관심과 다르다.

약속은 검토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말을 했다는 사실만으로 지켜진 것이 아니다. 실제로 도움을 청한 사람에게 무엇이 일어났는지, 아이가 말을 꺼낸 뒤 안전했는지, 분리된 아이의 생활이 안정되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지키지 못했다면 이유를 밝히고 바꾸어야 한다. 선언을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는 이 책이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과 아이를 보호하는 마음을 갈라놓지 않기를 바란다. 부모가 살아서 회복할 길을 넓히는 일이 아이의 안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동시에 부모의 회복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아이는 별도로 보호받아야 한다. 두 사람의 시간이 언제나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이 모든 말이 너무 당연하게 들릴 것이다. 그렇다면 그 당연함이 실제의 문장과 절차와 예산에서 어떻게 유지되는지 살펴보면 된다. 사건 앞에서 아이의 뜻을 쉽게 추정하는 말이 여전히 나오고, 도움을 청하는 사람이 문턱에서 돌아선다면 당연한 원칙은 아직 충분히 실현되지 않은 것이다.

아이에게는 부모와 이어진 삶이 있다. 그러나 부모에게 포함된 생명은 아니다. 부모가 무너지는 날에도 아이의 생명은 따로 지켜져야 한다. 부모가 다시 살아갈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이유와 아이가 보호받아야 하는 이유는 각각 충분하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사람을 더 정확히 부르고, 사정을 더 오래 듣고, 책임을 더 구체적으로 나누어야 한다. 아이가 언젠가 자기 삶을 자기 말로 설명할 수 있을 때까지, 그 시간을 함부로 닫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