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4장
물어보지 않았던 사람
어른들은 아이에게 질문을 많이 한다. 밥은 먹었는지, 숙제는 했는지, 오늘 시험은 어땠는지 묻는다.
어른들은 아이에게 질문을 많이 한다. 밥은 먹었는지, 숙제는 했는지, 오늘 시험은 어땠는지 묻는다. 질문이 많다는 사실만 보면 아이의 의견을 충분히 듣는 것 같다. 그러나 대답을 확인하려는 질문과 생각을 들으려는 질문은 다르다.
정해진 답을 요구하는 질문에는 아이가 들어갈 자리가 좁다. 괜찮지, 엄마 말이 맞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문장 끝에 물음표가 붙어 있어도 어른이 이미 결론을 내렸다면 아이는 그 결론에 맞는 표정을 찾게 될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아이가 같은 방식으로 반응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다른 말을 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다.
가상의 민재는 집에 가기 싫다고 말한다. 교사는 이유를 묻는다. 민재는 아버지가 요즘 화를 낸다고 했다가 곧 괜찮다고 덧붙인다. 교사는 어느 집이나 그럴 때가 있다고 말하고 수업에 들어간다. 이 짧은 대화만으로 집 안의 위험을 확정할 수는 없다. 다만 대화를 끝내는 대신 더 안전하게 확인할 기회는 있었을 것이다.
아이의 말을 존중한다는 것은 모든 말을 그대로 사실로 확정한다는 뜻이 아니다. 필요한 확인을 하면서도 말한 아이를 탓하지 않는 것이다. 한 번의 표현이 어른의 예상과 다르다고 해서 거짓말이라고 몰아붙이지 않고, 말이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처음의 불편함을 지워 버리지 않는 것이다.
아이에게도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두려운 일을 한 문장으로 설명하지 못할 수 있고, 가족에게 불이익이 갈까 걱정할 수 있다. 어른 역시 직장의 문제를 처음 만난 사람에게 곧바로 다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이가 망설인다는 이유로 아무 일도 없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또 하나의 경계가 있다. 아이가 위험을 충분히 설명해야만 보호받을 수 있어서는 안 된다. 어른이 만든 서류의 항목에 맞춰 말하지 못해도 아이는 안전해야 한다. 자기 집의 문제를 증명하고 해결책까지 제시하는 일은 아이의 몫이 아니다.
특히 죽음에 대한 말을 다룰 때, 아이에게 의견을 물었는지 여부만으로 문제를 축소해서는 안 된다. 물었다고 해서 부모가 아이의 죽음을 실행할 권한을 얻는 것은 아니다. 어른에게 의존하는 관계에서 나온 대답이 어떤 조건에서 형성되었는지도 보아야 한다. 아이의 목소리를 존중한다는 원칙을 위험한 선택의 승인 절차처럼 사용할 수는 없다.
우리가 들어야 할 것은 아이가 죽음에 동의했는지를 입증하는 말이 아니다. 지금 어디가 무섭고, 누구와 있으면 편하고, 오늘 무엇이 필요한지에 관한 말이다. 아이가 살아갈 조건을 알아보기 위한 질문이어야 한다.
민재에게 다시 물을 수 있다. 집에서 화가 날 때 무슨 일이 생기는지, 오늘 돌아가는 것이 걱정되는지, 믿고 이야기할 어른이 있는지. 그 질문은 공개된 교실 한가운데서 하면 안 될 수도 있다. 친구들이 듣는 자리에서는 하지 못할 말이 있기 때문이다. 듣는 일에는 장소와 시간도 포함된다.
그리고 어른은 지킬 수 없는 비밀을 약속하지 않아야 한다. 안전을 위해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수 있다면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설명해야 한다. 누가 무엇을 알게 되는지,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는 채 끌려가는 경험을 줄여야 한다. 보호는 아이를 또 다른 무력함에 빠뜨리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가 아이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말하려면, 아이가 어른의 기대와 다른 대답을 했을 때도 그 약속이 유지되어야 한다. 부모가 좋다는 말만 아이의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무섭다는 말은 철없는 투정으로 넘긴다면 듣는 척했을 뿐이다.
아이에게 질문하는 어른은 많다. 아이가 대답을 고칠 필요 없이 말할 수 있는 어른은 얼마나 있을까. 이 차이를 줄이는 일이 보호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