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사이글 1

지우개를 돌려주는 날

이 글은 앞선 논의를 생활의 장면으로 옮긴 허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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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앞선 논의를 생활의 장면으로 옮긴 허구다.

서윤은 교무실 문을 두 번 두드렸다. 안에서는 복사기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지현이 고개를 들자 서윤은 손바닥을 폈다. 작은 지우개가 놓여 있었다. 모서리에 연필로 누군가의 이름을 썼다가 지운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거 민서한테 좀 주세요.”

지현은 지우개와 아이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민서는 다음 교시에 돌아올 텐데, 쉬는 시간에 직접 주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말을 꺼내기 전에 서윤이 먼저 덧붙였다.

“오늘 일찍 가요.”

“어디 가는데?”

“몰라요. 엄마가 데리러 온대요.”

그 말만으로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아이들은 병원에 가기도 하고 친척 집에 가기도 한다. 지현은 책상 위 달력을 보았다. 조퇴에 관한 연락이 왔는지 확인할 생각이었다. 서윤은 문 쪽으로 돌아서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선생님, 다음 주에 달리기 하죠?”

“응. 날씨가 괜찮으면.”

“그럼 체육복 가져와야겠네요.”

서윤은 그제야 손을 내려 주머니에 넣었다. 지현은 무심코 다음 주에 보자고 말하려다가 아이가 오늘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했다. 물론 아이에게 모든 일정이 자세히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확인할 수 있는 일은 확인하는 편이 좋았다.

지현은 아이를 붙잡아 앉히고 집안 사정을 캐묻지 않았다. 먼저 물을 마실지 물었다. 그리고 보호자의 연락을 확인한 뒤 일정과 귀가 절차를 살폈다. 이 장면에는 위험을 단숨에 알아보는 교사의 특별한 직감이 없다. 평소의 절차를 건너뛰지 않는 어른이 있을 뿐이다.

서윤은 의자 끝에 앉아 운동화 앞코를 내려다보았다. 교무실은 생각보다 시끄러웠다. 전화가 울렸고 누군가는 다음 수업의 자료를 찾았다. 선생님들이 바쁘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서윤은 더 말을 보태지 않았다.

지현은 다시 아이에게 돌아왔다.

“오늘 어디에 가는지 확인해 볼게. 너도 궁금하면 같이 물어보자.”

서윤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가 모르는 일에 관해 어른에게 물어봐도 된다는 사실이 새로웠다. 아이에게는 설명을 요구할 권한이 없다고 누가 가르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설명 없이 정해지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다.

잠시 뒤 지현은 민서를 불렀다. 지우개를 돌려받은 민서는 다음 주에는 자기와 같은 조가 되자고 말했다. 서윤은 달리기를 못한다고 답했다. 민서는 자기도 잘하는 것은 아니라며 웃었다.

이 장면이 어떤 사건을 막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이가 일정을 모른다는 사실이 곧 위험의 증거인 것도 아니다. 여기서 보여 주고 싶은 것은 하나다. 어른의 바쁨 속에서도 아이의 질문이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지우개를 돌려주는 아이에게 다음 주의 약속이 있다는 사실을 누군가는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서윤은 교무실을 나가며 달력을 한 번 더 보았다. 다음 주 수요일 칸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서윤에게는 체육복을 가져올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