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 7장
그 어머니의 얼굴을 다시 보다
『마더』의 면회 장면을 떠올리면 나는 어머니가 느꼈을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싶어진다.
『마더』의 면회 장면을 떠올리면 나는 어머니가 느꼈을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싶어진다. 죄책감, 충격, 공포 같은 말들이다. 그러나 이름 하나로 설명이 끝난다면 그 장면은 그렇게 오래 남지 않았을 것이다. 아들을 사랑하는 사람과 아들을 해치려 했던 사람이 한 얼굴 안에 있다는 사실이 쉽게 정리되지 않기 때문에 오래 남는다.
우리는 좋은 부모와 나쁜 부모를 선명하게 나누고 싶어 한다. 좋은 부모는 끝까지 아이를 지키고, 나쁜 부모는 처음부터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하다. 현실의 사람은 그보다 복잡할 수 있다. 사랑한다고 느끼면서도 해칠 수 있고, 희생하면서도 상대를 지배할 수 있다. 그 복잡함은 해로운 행동을 용서할 이유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말만으로 안전을 판단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영화 속 어머니의 충격에는 자신이 믿어 온 이야기가 흔들리는 경험이 들어 있을 것 같다. 나는 이 아이를 위해 살아왔다는 이야기에, 이 아이가 나 때문에 죽을 뻔했다는 기억이 끼어든다. 헌신으로 설명해 온 세월 전체가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헌신의 세월이 과거의 일을 지우지도 못한다. 두 사실을 한꺼번에 감당해야 한다.
우리가 그 표정을 참회라고 읽고 싶은 까닭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잘못을 깨달은 사람의 눈물을 보면 세상이 조금 회복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놀랐다는 사실과 책임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은 다르다. 들킨 충격일 수도 있고, 사랑을 잃을 두려움일 수도 있다. 인물이 이후 무엇을 인정하고 어떻게 행동하는지까지 보아야 한다.
이것은 영화 인물만의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 아이에게 상처를 준 뒤 크게 울고 괴로워할 때, 주변 어른이 그 감정을 달래느라 아이를 잊는 일이 생길 수 있다. 부모도 충분히 힘들어하니 이제 그만하자는 말이 나온다. 그러면 아이는 자신의 아픔뿐 아니라 부모의 죄책감까지 돌보아야 하는 자리에 놓인다.
가상의 정은은 어린 시절 겪은 일을 성인이 되어 어머니에게 이야기한다. 어머니는 자신이 얼마나 힘들게 키웠는지 말하며 운다. 정은은 물을 가져다주고 괜찮다고 한다. 대화는 어머니를 위로하는 것으로 끝난다. 정은이 원했던 말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런 일을 겪게 해서 미안하다는 인정이었다.
이 장면에서 어머니의 눈물이 거짓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진실한 눈물도 다른 사람의 말을 막을 수 있다. 그래서 잘못을 마주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고통을 표현하는 능력만이 아니다. 상대가 겪은 일을 끝까지 듣고, 자기 사정으로 그 경험을 덮지 않는 태도다.
『마더』의 어머니가 아들의 기억을 듣는 순간에도 우리는 비슷한 질문을 할 수 있다. 아들의 말은 어머니에게 어떤 사건이 되었는가. 자신이 숨겨 온 비밀이 드러난 사건인가, 아니면 아들이 오래 품어 온 두려움이 처음 들린 사건인가. 두 해석 사이에는 어머니 자신의 충격과 아이의 경험 중 어디에 시선을 두는지의 차이가 있다.
나는 그 얼굴을 보면서도 아이의 자리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배우의 연기가 강렬할수록 관객의 마음은 어머니에게 붙잡힌다. 그때 조금 옆을 보면 아들도 있다. 자기 기억을 말한 사람, 그 대답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어머니의 감정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 말의 주인은 아들이다.
이 책이 영화에서 가져오려는 것은 한 어머니를 단죄하는 표정이 아니다. 가까운 두 사람의 기억이 다를 수 있다는 깨달음이다. 부모가 자기 삶을 희생의 역사로 설명할 때, 아이는 그 안의 어떤 날을 두려움으로 기억할 수 있다.
두 기억 가운데 힘 있는 쪽의 기억만 남겨 두지 않는 것. 나는 그 장면을 그렇게 오래 바라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