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가지 않았다사랑한다는 말 뒤에서

2부 · 8장

사랑한다는 말 뒤에서

너를 사랑해서 그랬다는 말은 많은 상황에서 나온다. 아이를 꾸짖은 뒤에도, 진로를 강하게 밀어붙인 뒤에도, 친구를 만나지 못하게 한 뒤에도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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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사랑해서 그랬다는 말은 많은 상황에서 나온다. 아이를 꾸짖은 뒤에도, 진로를 강하게 밀어붙인 뒤에도, 친구를 만나지 못하게 한 뒤에도 들을 수 있다. 이 말이 언제나 거짓은 아니다. 실제로 걱정하고 아끼는 마음에서 시작한 행동도 있다.

그렇지만 행동의 이유가 사랑이라고 해서 결과까지 안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상대가 다쳤다면 그 상처를 살펴야 한다. 사랑은 설명이 될 수 있어도 어떤 행동이든 허용하는 표가 될 수는 없다. 특히 상대가 거절하기 어려운 관계에서는 더 그렇다.

가상의 아버지는 민재의 휴대전화를 매일 확인한다. 위험한 사람을 만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아이의 나이와 상황에 따라 일정한 보호와 지도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친구와 나눈 모든 대화를 읽고, 자신에게 서운하다는 말까지 벌준다면 보호의 범위를 넘어선다. 아버지의 불안을 줄이기 위해 아이의 내면 전체를 검사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통제는 대개 처음부터 무서운 말로 나타나지 않는다. 내가 너를 제일 잘 안다. 네가 후회할까 봐 그러는 것이다. 세상에는 너를 이해할 사람이 없다. 이런 말이 반복되면 부모와 다른 생각을 하는 일이 곧 부모의 사랑을 배신하는 일처럼 느껴질 수 있다. 모든 가족이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친밀함이 반대할 자리를 없애는 방식은 경계해야 한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과 아이가 나를 필요로 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섞일 수 있다. 전자는 아이가 자라도록 돕지만 후자가 커지면 아이의 독립이 위협처럼 느껴질 수 있다. 부모도 외롭고 불안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해할 부분이 있다. 다만 그 외로움을 해결하는 책임을 아이에게 맡길 수는 없다.

아이에게 부모는 중요하다. 그러나 아이의 삶을 지탱하는 사람이 부모 한 명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친구와 교사와 친척, 믿을 수 있는 다른 어른이 생기는 것은 부모의 자리가 빼앗기는 일이 아니다. 아이가 기댈 곳이 늘어나는 일이다. 좋은 돌봄은 그 관계들을 적으로 만들지 않는다.

극단적인 선택을 다룰 때 사랑이라는 설명이 위험해지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아이를 혼자 남기지 않으려 했다는 말은, 다른 사람과 살아갈 아이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 말이 될 수 있다. 내가 없는 세상에서 아이가 사랑받을 수 없다는 판단은 아이를 염려하는 동시에 세상과 아이의 관계를 부모 혼자 결정한다.

부모가 실제로 도움받지 못한 경험이 있었다면 그 불신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 이유를 진지하게 들어야 한다. 그러나 그 경험을 아이의 미래 전체에 적용하는 순간에는 멈춰야 한다. 부모가 만나지 못한 도움을 아이가 만날 수도 있고, 지금 없는 지원을 사회가 마련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진실성만 따지면 논의는 쉽게 막힌다. 정말 사랑했다면 그럴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과 너무 사랑해서 그랬다고 말하는 사람이 맞선다. 나는 질문을 조금 옮기고 싶다. 그 행동이 아이를 안전하게 했는가. 아이에게 다른 사람으로 살아갈 공간을 남겼는가. 사랑의 크기를 재기보다 관계의 경계를 살펴보자는 것이다.

이 질문은 평범한 일상에서도 도움이 된다. 아이가 싫다고 했을 때 잠시 멈출 수 있는지, 내 뜻과 달라도 설명을 들을 수 있는지, 내가 잘못했다는 말을 할 수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부모의 권위는 한 번도 틀리지 않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틀렸을 때 고칠 수 있다는 믿음에서도 나온다.

나는 사랑을 의심하자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사랑이라는 말이 필요한 확인을 멈추게 하지 않기를 바란다. 아이가 안전하다는 것은 부모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더 많은 사실로 확인되어야 한다.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랑이 닿지 못한 곳도 볼 수 있어야 한다. 아이가 나와 다른 삶을 살아갈 자리까지 남겨 둘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