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 9장
어른 둘의 선택도 다시 물어야 한다
이 글을 처음 생각했을 때 나는 성인 부모끼리는 서로 의논해 함께 죽음을 택할 수도 있지만, 미성년 자녀의 죽음은 분명 다르게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글을 처음 생각했을 때 나는 성인 부모끼리는 서로 의논해 함께 죽음을 택할 수도 있지만, 미성년 자녀의 죽음은 분명 다르게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동의할 기회도 없고 독립적으로 판단할 조건도 부족하다는 점이 중요했다.
지금도 아이를 따로 보아야 한다는 생각은 같다. 다만 앞부분의 전제에는 더 많은 질문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성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언제나 자유롭고 동등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부 사이에도 두려움과 경제적 의존과 오랜 통제가 있을 수 있다. 둘이 함께 있었다는 이유로 둘의 뜻이 같았다고 정리해서는 안 된다.
가상의 부부를 생각해 보자. 한 사람은 돈을 관리하고 다른 사람은 가족의 재정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관계를 떠나고 싶어도 생활비와 거처가 없어 움직이지 못한다. 바깥에서는 부부가 모든 일을 함께 결정한다고 본다. 집 안에서 반대 의견을 말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장면만으로 어떤 사건을 예상할 수는 없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이름이 한 문장에 들어간다고 해서 동등한 선택이 입증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알 수 있다. 동반이라는 말은 성인에게도 신중해야 한다. 강요와 위협, 판단에 영향을 미친 조건은 구체적인 사실로 살펴야 한다.
그렇다면 자율성이라는 말은 쓸모가 없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사람을 자기 삶의 주체로 대하는 것은 중요하다. 다만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말을 고통 속의 사람을 혼자 두는 근거로 삼아서는 안 된다. 죽음을 말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피고 살아갈 선택지를 넓히는 일은 그 사람의 존엄과 모순되지 않는다.
나는 이 책에서 자살을 성인의 정당한 해결책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아이의 피해를 분명히 말하기 위해 성인의 죽음을 가볍게 여길 필요도 없다. 어른 역시 위기에서 보호받고 도움을 받을 사람이다. 아이를 살려야 한다는 말과 부모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말은 함께 갈 수 있다.
성인의 의사를 확인하는 문제와 미성년 자녀를 보호하는 문제는 구분해서 보되, 어느 쪽에도 쉬운 추정을 넣지 않아야 한다. 남긴 글에 두 사람의 이름이 있다는 이유로 공동 의사로 확정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대신 설명했다는 이유로 곧바로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책임의 무게는 친밀한 관계라는 이유로 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 다른 사람의 생명을 해쳤다면 그 경위와 책임을 따져야 한다. 구체적인 법적 판단은 사실관계와 적용 법률에 따라 수사와 재판에서 이루어질 일이다. 이 책이 강조하는 것은 결론을 앞질러 내리자는 주장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말로 필요한 질문을 생략하지 말자는 원칙이다.
처음의 내 생각을 고쳐 쓰는 것은 주제를 약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한결같은 기준을 세우게 한다. 나이와 관계를 떠나 사람마다 따로 확인해야 할 의사와 따로 지켜야 할 생명이 있다는 기준이다. 아이에게는 그 기준을 실현하기 위한 더 두터운 보호가 필요하다.
아이는 어른의 설명에 포함되기 쉽고, 두려움을 말할 통로가 적을 수 있다. 그래서 아이를 별도로 살펴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다른 성인 피해자의 가능성을 지워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을 보이게 하기 위해 또 다른 사람을 가릴 이유는 없다.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은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다. 가족이면 뜻도 같을 것이라는 성급한 믿음이다. 같은 집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각각 들을 준비가 되어 있을 때, 비로소 함께라는 말을 조심스럽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