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 16장

떼어 놓기 전에 도울 것들

위기에 처한 가족을 돕자고 하면 가장 먼저 아이를 다른 곳에 맡기는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

책으로 읽기

위기에 처한 가족을 돕자고 하면 가장 먼저 아이를 다른 곳에 맡기는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 당장 안전을 위해 분리가 필요한 상황도 있다. 하지만 모든 어려움의 첫 대답이 분리일 수는 없다. 아이가 익숙한 관계 안에서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먼저 살펴야 한다.

가족을 유지한다는 말도 오해하기 쉽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같은 집에 살아야 한다는 뜻이라면 위험하다. 여기서 지키려는 것은 가족이라는 외형이 아니라 사람의 안전과 안정된 관계다. 함께 사는 것이 안전한지, 떨어져 사는 것이 필요한지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일이 앞서야 한다.

가상의 정은에게 필요한 도움은 아이와의 영구적인 이별이 아니다. 야간 근무 시간의 돌봄과 밀린 주거비를 상담할 길, 자신의 건강을 챙길 시간이다. 이런 필요가 해결되면 아이와 지내는 조건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형편이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양육 능력이 없다고 평가한다면, 도움으로 풀 수 있는 문제를 관계의 결함으로 바꾸게 된다.

지원의 내용을 정할 때는 생활을 구체적으로 보아야 한다. 하루 몇 시간의 빈틈이 생기는지, 어떤 비용이 가장 부담인지, 이동은 가능한지, 아이에게 특별히 필요한 돌봄은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비슷한 소득의 가족이라도 처지는 다르다. 지원 사업의 이름이 같다고 필요한 조합까지 같아지는 것은 아니다.

주거와 생계, 돌봄과 치료는 서류에서는 다른 항목이지만 생활에서는 이어져 있다. 병원에 가려면 아이를 맡겨야 하고, 아이를 맡기려면 비용과 이동 시간이 들고, 그 시간에는 일을 하지 못할 수 있다. 한 항목만 지원한 뒤 다른 문제는 개인이 알아서 하라고 하면 실제 이용이 어려울 수 있다.

나는 여기서 모든 가족에게 같은 서비스를 보장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지역과 자격과 제공 여건은 다를 수 있다. 이 장이 제안하는 것은 서비스를 설계하고 연결할 때 생활의 연속성을 기준으로 삼자는 방향이다. 종이에 있는 지원을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지원으로 바꾸어야 한다.

가족의 회복을 논할 때 부모의 휴식도 빠져서는 안 된다. 돌봄이 힘들다고 말하는 순간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으로 보인다면, 부모는 한계를 숨기게 된다. 잠시 쉬고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은 돌봄을 포기하는 행동과 다르다. 지속할 수 있게 만드는 조건일 수 있다.

그러나 휴식 지원이 위험한 행동을 눈감아 주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누군가 아이를 해칠 우려가 있다면 아이의 안전을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 지원과 보호는 서로 경쟁하는 업무가 아니라 함께 검토되어야 할 일이다. 부모가 도움을 받는 동안 아이가 안전한지 묻는 것은 불신의 선언이 아니다.

아이의 의사도 생활의 중요한 정보다. 어느 사람과 있으면 편한지, 학교를 옮기는 것이 걱정되는지, 부모와 만나는 방식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아이에게 전체 계획의 책임을 맡겨서는 안 된다. 의견을 듣는 것은 어른의 책임을 아이에게 넘기는 절차가 아니다.

가족을 돕는 데 드는 자원을 아깝게 여기는 시선도 있다. 부모가 책임져야 할 일을 왜 사회가 떠맡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아이는 이미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 아이의 안전과 성장은 한 집의 사적인 성과만이 아니다. 부모에게 책임을 요구하는 사회라면 그 책임을 수행할 조건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도움 없이도 버티는 가족만 살아남는 사회가 아니다. 어려움이 생겼을 때 관계를 해체하거나 사람을 다치게 하기 전에 부담을 나눌 수 있는 사회다. 가족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일과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는 일은 양립할 수 있다.

아이를 안전하게 하기 위해 반드시 떨어져야 한다면 필요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 하지만 도울 수 있는 것을 돕지 않은 채 분리만을 해법으로 남겨 두어서는 안 된다. 그 사이에 어떤 길을 더 만들 수 있는지 묻는 것이 예방의 중요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