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 15장

한 집 안의 다른 피해자

가족 사건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살아남은 사람에게서 설명을 구한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미리 알지 못했는지, 지금은 어떤 마음인지 묻는다.

책으로 읽기

가족 사건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살아남은 사람에게서 설명을 구한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미리 알지 못했는지, 지금은 어떤 마음인지 묻는다. 그러나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모든 경위를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 역시 충격과 상실 속에 있을 수 있다.

특히 살아남은 부모를 곧바로 가해자나 공모자로 추정해서는 안 된다.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위험에 놓였는지는 사실관계에 따라 따로 확인해야 한다. 관계의 이름만으로 책임을 나누어 주는 일은, 가족 전체가 같은 선택을 했다고 말하는 오류와 닮아 있다.

가상의 가족에는 형제 둘이 있다. 동생에게 큰 피해가 생기고 형은 살아남았다. 사람들은 형에게 착하게 살아서 동생 몫까지 잘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위로하려는 말이지만 아이의 어깨에는 다른 생애 하나가 더 올라간다. 슬퍼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데 훌륭한 사람이 되어 상실의 의미까지 만들어야 한다.

살아남은 사람은 누군가의 몫을 대신 살아야 할 의무가 없다. 잘 살 때마다 죽은 가족에게 미안해할 필요도 없고, 힘들 때마다 자신이 살아남은 이유를 증명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슬픔과 기쁨이 함께 존재할 수 있도록 곁에서 지지할 필요가 있다.

남은 가족에게는 사회의 시선도 부담이 될 수 있다. 사건의 성을 함께 쓴다는 이유로 친척과 형제까지 설명을 요구받는다. 온라인에 이름과 학교가 퍼지면 일상으로 돌아갈 길이 좁아질 수 있다. 관심을 갖는다는 말 아래 사생활을 알아내는 행동이 반복된다면 애도가 또 다른 침해가 된다.

사건을 공적으로 검토하는 데 필요한 정보와 개인의 고통을 구경하기 위한 정보는 구분해야 한다. 어떤 기관이 어떤 대응을 했는지는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아이의 친구 명단이나 남은 가족의 새 거처까지 대중이 알아야 할 이유는 없다. 공익을 말할수록 정보의 필요성을 더 엄격히 따져야 한다.

남은 가족 안에서도 감정은 다를 수 있다. 누군가는 부모를 원망하고 누군가는 부모를 이해하려 한다. 같은 사람이 하루에도 두 마음 사이를 오갈 수 있다. 누구의 애도가 진짜인지 순위를 매기면 가족은 서로의 슬픔까지 판단해야 한다. 다른 방식으로 기억할 자리를 남겨 두는 것이 필요하다.

가해 행동을 한 가족을 애도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 애도가 피해를 부정하는 말로 이어지지 않도록 경계를 세우면서도, 개인이 가진 복잡한 상실 자체를 금지할 수는 없다. 공적인 책임 판단과 사적인 슬픔이 항상 같은 속도로 정리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복잡함 앞에서 쉬운 조언은 오히려 사람을 고립시킨다. 이제 잊으라는 말, 가족이니 용서하라는 말, 생각을 바꾸면 괜찮아진다는 말은 각자의 시간을 빼앗을 수 있다.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는 접근할 길을 마련하고, 일상에서는 무엇을 대신 처리해 줄 수 있는지 묻는 편이 나을 때가 있다.

학교나 직장으로 돌아갈 때도 사건을 반복해서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조정이 필요할 수 있다.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 공개 위로 행사가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좋은 의도만 확인할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야 한다. 도움의 방식도 동의와 선택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아이의 개별성을 이야기한다면 남은 사람에게도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같은 사건을 겪었다는 이유로 같은 마음을 요구할 수 없다. 사람마다 잃은 관계와 남은 두려움이 다르다. 한 가족을 여러 사람으로 보는 태도는 사건 전에도, 사건 뒤에도 필요하다.

죽은 아이를 잊지 않는 일과 살아남은 가족이 평범한 하루를 되찾도록 돕는 일은 함께 할 수 있다. 기억한다는 이유로 그들의 삶을 사건 속에 붙들어 둘 필요는 없다. 사건 이후에도 각자의 이름으로 살아갈 시간을 돌려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