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부 · 26장

엄마의 본능, 아빠의 책임이라는 말

『마더』의 장면으로 시작한 책이므로 이 글의 시선이 어머니에게만 향하지 않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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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의 장면으로 시작한 책이므로 이 글의 시선이 어머니에게만 향하지 않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아이를 둘러싼 책임을 말할 때 우리는 여전히 어머니의 마음을 더 많이 묻는다. 어떻게 엄마가 그럴 수 있느냐는 말에는 어머니라면 본능적으로 모든 것을 감당할 것이라는 기대가 들어 있다.

그 기대는 아이를 지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머니를 고립시킬 수 있다. 힘들다고 말하면 사랑이 부족한 사람이 되고, 돌봄을 나누려 하면 책임을 피하는 사람이 된다. 한계를 인정할 수 없는 자리에 놓인 사람에게 혼자서 잘하라고만 요구하는 것은 보호의 방법이 아니다.

동시에 어머니의 사랑을 신성한 것으로 취급하면 해로운 행동도 정확히 보지 못할 수 있다. 엄마니까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의 기대가 과도한 책임을 지우면서 책임을 흐리는 설명으로도 작동하는 것이다. 어느 쪽에서도 아이의 실제 경험이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

아버지에게 붙는 언어도 좁다. 돈을 벌고 가족을 책임지는 사람이라는 역할이 강하면 실직이나 소득 감소가 자기 존재 전체의 실패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 압박은 살펴야 한다. 그러나 부양자의 자리가 가족의 모든 의사를 대신 결정할 권한이 되어서는 안 된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지배한다는 뜻이 아니다.

가상의 부부는 저녁에 돌봄 시간을 이야기한다. 어머니는 혼자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하고 아버지는 돈을 벌어 오는데 무엇을 더 해야 하느냐고 답한다. 두 사람 모두 지쳐 있다. 서로의 수고를 인정하지 못한 채 대화가 끝나면 아이의 필요도 해결되지 않는다. 이 장면은 어느 한 성별의 타고난 성향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역할을 나누는 방식의 문제를 보여 준다.

양육의 책임을 함께 진다는 것은 똑같은 시간표를 강요한다는 뜻은 아니다. 상황에 맞게 분담할 수 있다. 다만 한 사람의 부담이 보이지 않는 기본값이 되지 않아야 한다. 누가 병원 예약을 기억하고, 학교 연락을 받고, 아이의 변화를 살피는지 실제 일을 기준으로 보아야 한다.

부모가 함께 살지 않는 가족도 있다. 조부모나 다른 보호자가 돌보는 집도 있다. 보호의 체계가 한 가지 가족 형태만을 정상으로 놓으면 다른 가족은 계속 자기 사정을 설명해야 한다. 아이의 필요를 중심에 놓으면 돌보는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더 정확히 볼 수 있다.

성별에 따라 책임을 미리 가정해서도 안 된다. 사건에서 누가 무엇을 했는지는 구체적인 사실로 확인해야 한다. 어머니라서 피해자일 것이라고도, 아버지라서 결정했을 것이라고도 단정할 수 없다. 관계 안의 힘은 성별뿐 아니라 경제와 건강, 나이와 정보, 여러 조건 속에서 형성된다.

우리의 말은 도움의 이용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아버지가 돌봄 상담을 받을 때 특별히 훌륭한 사람처럼 대하면 돌봄은 여전히 어머니의 기본 업무로 남는다. 어머니가 잠시 쉬고 싶다고 할 때 죄책감을 자극하면 지원을 이용하기 어렵다. 누구든 돌보는 사람으로 필요한 도움을 구할 수 있어야 한다.

아이에게도 부모의 역할을 절대적인 힘으로 가르치지 않았으면 한다. 아버지 말이니까, 어머니 마음이니까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말 대신 어른도 잘못할 수 있고 무섭거나 다치는 일이 있으면 다른 어른에게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줄 필요가 있다. 부모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아이의 안전을 낮출 수는 없다.

이 책은 좋은 엄마와 나쁜 엄마를 가르는 책이 아니다. 완벽한 아버지의 기준을 더하는 책도 아니다. 돌봄을 맡은 사람이 자기 한계를 말할 수 있고, 아이는 그 한계 때문에 생명을 위협받지 않는 조건을 생각하는 책이다.

부모의 역할을 찬양하는 말보다 실제로 나누어지는 책임이 필요하다. 본능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내려놓고 사람과 자원을 더해야 한다. 아이를 지키는 일은 특정 성별에게 부여된 신비한 능력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지속해서 수행해야 할 일이다.